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모딜리아니

newshub 2023. 5. 29. 14:15

모딜리아니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 현대미술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미술사 고전을 재해석하고, 미술개념을 바꾸어 현대미술의 접근성을 확대한 미술가로 평가받습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위치와 작품의 특징, 그리고 주요 작품들과 시기별 작품 활동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모딜리아니 생애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의 본명은 아메데오 카를로 에스타코 모딜리아니(Amedeo Carlo Este Modigliani)입니다. 그는 1884년 7월 12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이탈리아의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유대교 전통과 문화를 따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적인 재능을 보였으며, 1898년에는 여자 아이들을 그리는 첫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1902년에 파리로 이주하여 보자르 미술학교(L’Ecole des Beaux-Arts)에 들어갔지만, 학교를 떠나고 독학하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예술가로의 열망은 부모님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는 19세기말 유럽 미술계의 전통과 권위에 반항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들처럼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수많은 기하학 조각 그리고 여성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특유의 감성적 표현력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결핵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1910년대에 걸쳐 인상주의와 큐비즘 등 다양한 화풍을 시도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마지막 작업은 1919년에 완성한 '덴마크에게 축하하는 소녀(La petite fille en bleu)'입니다. 모딜리아니는 그 해 11월 24일 방전증세로 35살에 별세했습니다.

 

예술적 위치와 업적

 

모딜리아니는 현대 미술사에서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인물화와 누드화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얼굴과 몸의 비율을 과장하고 단순화하여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하면서도, 눈동자가 없는 마스크 같은 얼굴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표현된 몸체에 특유의 감성적 표현력을 담았습니다. 그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재해석하며 살아있는 몸의 움직임과 자세를 아름답게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예술 철학과 사회 비판을 작품에 반영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파리의 몽파르나스 지역에 모인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적 방향과 영감을 공유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그에게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기회를 제공하여 모딜리아니 작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대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모더니즘부터 초현대 미술까지 예술의 처리 방식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모딜리아니의 작품이 전 세계적인 미술관의 컬렉션에 수록되어 있으며, 벨기에 브뤼셀의 마그리트 박물관,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특징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주로 인물화 그것도 초상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탁월한 데생력을 반영하는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티에르 등이 특색입니다. 그는 파울 세잔과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영향을 받았으며, 조각가로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총 314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대부분 인물만을 그렸습니다. 그의 인물화는 가늘고 긴 목이나 달걀 모양의 얼굴을 가는 선으로 둘러 독특한 기품과 아름다움을 나타냈습니다. 다음의 몇 가지 대표작을 소개하겠습니다.

  • 꽃 파는 소녀 (La Vendeuse de fleurs) : 1916년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입니다. 모딜리아니가 파리에서 만난 여성들 중 한 명인 로자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로자는 모딜리아니의 다른 작품들에도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특유의 긴 목과 달걀형 얼굴, 뚜렷한 눈과 입술을 잘 보여줍니다.
  • 문지기의 아들 (Le Fils du concierge) : 1918년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입니다. 모딜리아니가 니스에서 거주하던 아파트의 문지기의 아들을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어린이를 그린 드문 예로, 아이의 순수하고 귀여운 표정과 태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벌거벗은 에리부리 (Nu couché) : 1917년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입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여러 누드화 중 가장 유명하고 비싼 작품입니다. 2015년에는 1억 7천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면서도 성적인 매력보다는 우아함과 평화로움을 강조합니다.
  • 폴 기용의 초상 (Portrait de Paul Guillaume) : 1915년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입니다. 폴 기용은 프랑스의 화랑주인이자 미술 수집가로, 모딜리아니와 친분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기용의 날카로운 시선과 정교한 복장을 잘 보여줍니다.
  • 잔 에뷔테른의 초상 (Portrait de Jeanne Hébuterne) : 1918년 작품으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것입니다. 잔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연인이자 뮤즈였으며, 그가 죽은 후 자살한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잔의 부드러운 얼굴과 옷깃을 연한 색조와 섬세한 붓터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낸 뛰어난 화가로서 개척한 새로운 화풍을 선보이면서도 자신만의 화풍과 고유한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수많은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20세기 초 현대미술에 독창성과 혁신성을 불어넣은 이탈리아 화가입니다. 그는 주로 인물화와 누드화를 그렸으며, 가늘고 긴 목과 달걀형 얼굴,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과 미묘한 색조 등이 특징입니다. 세잔과 툴루주 로트렉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조각가로서도 활동했습니다. 꽃 파는 소녀, 문지기의 아들, 벌거벗은 에리부리, 폴 기용의 초상, 잔 에뷔테른의 초상 등이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가난하고 병약하게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인생이었습니다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새로운 화법을 개척한 화가로서 후세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작품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중 하나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미술사상과 철학계를 크게 바꾸고, 미술의 개념을 재구성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작품들은 이론과 구상을 강조했으며,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채, 조형적 방식을 채용하여 현대미술의 주요 작품들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모딜리아니는 ‘미래 신학적’ 예술적 위치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위치는 교황 레오 13세가 1893년 발표한 소설 '미래 적’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명종, 시공미술, 연속성 등의 개념을 바탕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기에 이른 시기에는, 모딜리아니는 ‘안티 아카데미즘’ 예술 수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전개하였습니다. 이 수법은 화가 자신의 시각적 경험과 상상력에 기반을 둔 것으로, 대중 예술 선호와 대조되는 수법입니다.

 

1. 프로토 산드로 시기
(Proto-Sandro Period, 1895-1902)

프로토 산드로 시기는 모딜리아니가 1895년부터 1902년까지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에서 지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그는 다양한 작품들을 제작하고, 그동안 보유했던 그림 기술과 시각적 아이디어를 보다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특히, 프로토 산드로 시기에는 그의 그림에 빛과 그림자의 대비, 그림 속 물체의 비례적 배치 등이 더욱 강조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더욱 색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갖추었습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그의 작품들은 마치 내적 집요함과 정교함을 지니면서도 강렬한 표현력으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프로토 산드로 시기는 그가 그림의 예술성을 보다 극대화하고 세련된 기술로 표현하면서, 그다음 시기인 팔레에버 시기로 가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① 카넬
(Canal, Venice, 1895)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그린 풍경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림 속 배경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채널을 담고 있으며, 조명과 그림 속 인물의 비례적인 구성 등으로 그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 작품입니다.

② 밀라노 대피
(The Escape from Milan, 1902)

이탈리아 단일국가 지향 운동 중 이탈리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브라운 인사이딩(brown uprising)에 참여하면서, 그는 프로토 산드로 시기 마지막 작품 중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밀라노를 대피하면서 집을 떠나는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③ 올랑드 로맨
(Olanda romantica, 1898)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네덜란드에서 그린 풍경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받고, 이러한 경험이 그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④ 과거의 영광
(La Gloria del Passato, 1902)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학교 시절에 그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작가의 교육 생활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예시 중 하나입니다.

⑤ 피렌체의 교회
(Church in Florence, 1902)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프로토 산드로 시기에 그린 풍경화 중 하나입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영감을 받고, 이러한 경험이 그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작품은 피렌체의 교회와 건물들을 담고 있으며, 그림 속 색상과 분위기가 그의 감성을 잘 나타냅니다. 이 작품은 50 x 40 cm의 유화로, 이탈리아의 피렌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2. 파리 몽파르나스 시기
(Paris Montparnasse Period, 1906-1914)

이 시기에 그는 파리 몽파르나스 지역의 팔레옌버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의 작품에 색채와 텍스쳐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시기였습니다. 그가 파리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영감을 얻은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그는 조각과 회화를 모두 연습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갔습니다.

① 황금머리의 S
(Sculpturesque Heads of a Young Woman, 1909)

모딜리아니가 파리에 살던 1909년경에 제작한 청동 조각입니다. 이 작품은 높이 65cm, 폭 23cm, 길이 36cm의 크기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조각으로 표현한 여성의 머리 중 하나로, 길고 가늘며 기하학적으로 단순화된 형태와 미소를 띤 표정이 특징적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모딜리아니가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은 모딜리아니가 피카소의 작품을 보기 전에 이미 자신의 조각 스타일을 정립했다고 반박합니다.

② 파리 거리 유동
(Le Flâneur, 1913)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베네치아에서 그린 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 거리와 상점 등이 모두 섬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로 46cm, 세로 55cm의 크기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잘 그리지 않았던 풍경화 중 하나로, 그가 베네치아에서 보았던 생생한 도시의 분위기를 담아낸 것입니다.

③ 빨간 십자가
(Red Cross, 1915)

이 작품은 친구인 막스 자코브스의 스튜디오를 그린 것입니다. 색칠된 벽과 그림들, 가구들이 보입니다. 이 작품은 가로 46cm, 세로 38cm의 크기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에서 자식들을 대피시키고, 빨간 십자를 도우면서 자신도 인테리어 환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④ 잔 에뷔테른의 초상
(Portrait of Jeanne Hébuterne, 1919)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사랑한 여인이자 모델이었던 잔 에뷔테른의 초상화입니다. 잔은 모딜리아니와 함께 살면서 그의 작품에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잔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으며, 긴 목과 얼굴, 크고 검은 눈동자가 특징적입니다. 잔의 얼굴에는 슬픔과 고독이 묻어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로 55cm, 세로 46cm의 크기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⑤ 앉아 있는 누드
(Seated Nude, 1917)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팔레옌버 시기에 많이 그린 누드화 중 하나입니다. 모딜리아니는 여성의 몸을 길쭉하고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켜 표현하면서도, 감각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 작품에서 여성은 무심한 듯한 표정과 자세로 그려져 있으며, 밝은 배경과 대비됩니다. 이 작품은 가로 92cm, 세로 60cm의 크기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⑥ 앉아 있는 파란 드레스 여인
(Woman with a Blue Dress, 1917)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파리에서 그린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여성은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으며, 긴 목과 얼굴, 크고 검은 눈동자가 특징적입니다. 여성의 얼굴에는 슬픔과 고독이 묻어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가로 100cm, 세로 65cm의 크기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3. 메종 쿠브리에 시기
(Maison Cuvrier, 1907-1911)

메종 쿠브리에 시기는 모딜리아니가 파리의 메종 쿠브리에라는 집에서 살며 그림을 그린 시기로, 이곳에서 그는 예술적 변화를 이루며 그의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그는 주로 세련된 미국인 모피트 가문의 후원을 받았으며, 과거 작업과는 달리 더욱 엄격하면서도 깔끔한 그림체로 완전히 새로운 화풍을 선보이게 됩니다.

① 두 인물의 풍경
(Paysage aux deux figures, 1907)

모딜리아니가 파리에서 만난 러시아 화가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오시포프와 그의 아내 베라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모딜리아니가 삶의 동반자를 찾고 있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② 모자를 쓴 여인
(Woman with a Hat, 1907)

이 작품은 메종 쿠브리에 시기 이전에 제작한 작품 중 하나지만, 이 시기에도 여전히 인기를 끌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여성 집안의 부인인 아메디앙 무시아르와 그녀의 모자를 그린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화풍에 변화의 전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모자를 쓴 여인>은 모딜리아니가 사랑했던 여성인 아메디앙 무시아르의 초상화로, 그녀의 성격과 관계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③ 앉아 있는 남자
(Seated Man, 1918)

이 작품은 메종 쿠브리에 시기 후반부에 제작한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으며, 긴 목과 얼굴, 강조된 입술 등 모딜리아니 특유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자의 얼굴에는 궁금함과 고통이 읽힙니다.

④ 장식된 목걸이를 한 여인
(Woman with a Decorated Necklace, 1917)

이 작품은 메종 쿠브리에 시기 후반부에 제작한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여성은 화려한 목걸이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며,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여성의 얼굴은 길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눈동자는 비워져 있습니다.

⑤ 파리의 거리
(Street in Paris, 1911)

이 작품은 메종 쿠브리에 시기 중반부에 제작한 풍경화 중 하나입니다. 그림 속에는 파리의 거리와 건물들이 단순화되고 기하학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색상은 주로 회색과 갈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분위기는 칙칙하고 우울합니다.

⑥ 앉아 있는 두 여인
(Deux femmes assises, 1918)

모딜리아니가 니스에서 만난 두 명의 모델을 그린 작품으로, 한 여인은 잔 에뷔테른의 친구인 에밀리아 로드리게스이고 다른 한 여인은 모르게트라는 이름의 스페인 출신 모델이라고 합니다.

⑦ 장미를 든 여인
(Woman with a Rose, 1916)

이 작품은 메종 쿠브리에 시기 중반부에 제작한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여성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으며, 연한 파란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여성의 얼굴은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눈동자는 살짝 감겨 있습니다.

⑧ 앉아 있는 남자와 여자
(Seated Man and Woman, 1919)

이 작품은 메종 쿠브리에 시기 후반부에 제작한 인물화 중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의자에 앉아 있으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얼굴과 몸은 길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색상은 어둡고 칙칙합니다.

 

4. 메종 팔레예버 시기
(Maison Palayevo, 1911-1919)

이 시기는 모딜리아니가 파리의 메종 팔레예버라는 아틀리에에 거주하면서 활동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모딜리아니는 주로 인물화와 누드화를 그렸으며, 그의 특유의 화풍이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인물화는 길고 날카로운 얼굴과 목, 비워진 눈동자, 간결하고 강렬한 색채가 특징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잔 에뷔테른을 비롯해 친구들이나 모델들의 초상을 많이 그렸습니다. 또한, 여성의 누드화를 대담하고 선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소녀
(The Little Peasant, 1916)

이 작품은 알렉산드르의 친구인 로렌스라는 여성의 초상화입니다. 여성은 꽃을 들고 있으며, 붉은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여성의 얼굴은 길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눈동자는 비워져 있습니다.

② 주브 공병대원
(The Boy of the Zouaves, 1919)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파리에서 만난 소년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소년은 감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연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소년의 얼굴은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눈동자는 살짝 감겨 있습니다.

③ 눕는 여인
(Reclining Nude, 1917)

여성은 벌거벗은 채 소파에 누워 있으며, 도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성의 몸은 부드럽고 육감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색상은 밝고 화려합니다.

④ 폴 기용의 초상
(Portrait of Paul Guillaume, 1916)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친구이자 후원자인 폴 기용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남자는 정장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남자의 얼굴은 길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눈동자는 비워져 있습니다.

⑤ 장식된 목걸이를 한 여인
(Woman with a Decorated Necklace, 1917)

이 작품은 메종 팔레예버 시기 중반부에 제작한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여성은 화려한 목걸이와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며, 빨간색과 파란색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드레스를 입고 있습니다. 여성의 얼굴은 길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으며, 눈동자는 비워져 있습니다.

 

5. 구업아트 시기
(1918-1930)

구업아트 시기는 모딜리아니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미술의 방식을 거부하고 혁신적인 방법을 추구한 시기로,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문화적 변화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미술, 조각, 공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형식과 표현이 탄생했으며, 현대 생활의 속도와 리듬, 기계와 산업화의 모습에 대응하는 새로운 미술 언어를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가인 모딜리아니는 자연 주제보다는 기계나 산업화의 모습을 그리고, 전통적인 화풍보다는 기하학적이고 강렬한 색채와 라인을 활용했습니다. 배경도 차분하고 조용한 배경보다는 활기찬 도시 풍경을 그렸습니다. 구업아트의 혁신적인 조합과 역동적인 스타일은 후대 산업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 시기의 인상적인 작품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구업아트 시기에는 게르마페르디 인터내셔널 (Germaine Peignot, dite le Sphinx : 1930)이나 각자 춤을 추게 한다 (Le pas d’un autre : 1919) 등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구업아트의 혁신적인 조합과 역동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 자동차 전차
(The Railway, 1918)

몽파르나스 역에서 본 기차와 전차를 단순화하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전차와 기차의 움직임과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선과 색상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배경은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이루어진 도시 풍경으로, 현대 도시의 활력과 소음을 나타냅니다.

② 파리의 거리
(Street in Paris, 1919)

파리의 거리를 표현한 작품입니다. 건물과 차량은 각진 형태로 단순화되고 색상은 밝고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거리에 사람들은 없고, 대신 창문에는 여러 가지 모양과 색상의 커튼이 걸려 있습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도시 생활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③ 각자 춤을 추게 한다
(Le pas d'un autre, 1919)

흑백 그림형식으로 집필한 '각자 춤을 추게 한다’는 평면미술로서 각각 다른 자세와 표정으로 춤추는 인물들과 그림과 합치면 동적인 구성을 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와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④ 라 간팡의 건립
(Construction de la Tour Eiffel, 1924)

모딜리아니가 구업아트 시기에 발표한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라 간팡의 강철 탑을 묘사하면서, 색깔과 도형, 질감 등 미술 언어에 대한 창조적 시도를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구업아트의 혁신적인 조합과 역동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⑤ 게르마페르디 인터내셔널
(Germaine Peignot, dite le Sphinx, 1930)

검은색, 흰색, 빨간색과 같은 대비를 통해 작업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모딜리아니의 화풍은 구업아트 시기를 이끌어 간 주요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게르맹 페뇽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6. 일러스트레이션 시기
(1930-1950)

모딜리아니가 1930년대 이후에 그림을 그린 시기로, 그의 작품은 일러스트레이션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어려운 시기(Les Grandes Decorations)’, 그의 마지막 작업이자 대작이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시기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시도해 보았던 다양한 화풍과 기법들이 결합되어, 색채, 그림체, 광파장의 활용이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특히 그는 작업에 앞서 다양한 컬러 프린트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화면 구성이 중요한 일러스트레이션 시기에서는 그림체가 더욱 독특한 형태로 표현됩니다.
전통적인 묘사보다는 간결하면서도 다양한 미적 요소가 함께 녹아있는 그림체로 인기를 끌었으며, 이러한 특징은 후세 음악, 문학, 디자인, 건축 등의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단편 소설과 같은 작품도 많이 그렸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작품의 상황이나 인물에 대한 더욱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작품 내부적인 상황을 더욱 신뢰성 있게 묘사하였습니다.

① 개요
(L'Apprenti sorcier, 1934)

모딜리아니는 이 시기에 일러스트레이션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개요>라는 작품을 비롯하여 몇몇 예술사들은 그의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이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을 만한 퀄리티를 지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폴 듀크의 동명의 음악과 함께 공연되었으며, 마법사의 제자가 마법을 부리다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색채와 도형, 움직임과 정지 등의 대비를 통해 재미있고 활발한 분위기를 연출하였습니다.

② 쇼팽
(Chopin, 1934)

모딜리아니는 이 시기에 음악가들의 포트레이트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의 유쾌한 일러스트레이션들은 이후 그가 독자와 증강적 관계를 형성하게 될 시각적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 작품은 폴란드 출신의 거장 쇼팽을 그린 것으로, 쇼팽의 음악은 감정적이고 낭만적이며, 국민적인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쇼팽의 얼굴과 몸을 간결하게 표현하면서도, 표정과 자세에서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었습니다.

③ 어려운 시기
(Les Grandes Decorations, 1938-1950)

모딜리아니가 일러스트레이션 시기에 완성하지 못한 대작으로, 8개의 거대한 벽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벽화들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 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철학과 비전을 보여줍니다. 모딜리아니는 이 벽화들을 위해 수많은 스케치와 연구를 하였으며, 색채와 형태, 조명과 공간 등 다양한 요소를 실험하였습니다. 이 벽화들은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재능과 열정을 최고조로 드러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④ 햇볕 아래의 선쿠르
(Seated woman in front of closed shutters, 1950)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일러스트레이션 시기 가운데 특히 나중 작업으로, ê에 특징적인 음영, 축소된 도형, 단순한 색상, 흑백 시각 미디어 등이 보이며, 이 시기의 그의 작업에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작품은 한 여성이 창문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여성의 실루엣과 창문 사이에 생기는 대비와 긴장감이 인상적입니다. 모딜리아니는 여성의 심리상태와 주변 환경을 감각적으로 전달하였습니다.
ê: 프랑스어로 '그것’이라는 의미로, '에’라고 읽고, 예술 운동의 이름으로는 '에 르무브망’이라고 함.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리며,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함.

⑤ 어린 소녀의 초상
(Portrait of a Young Girl, 1939)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일러스트레이션 시기에 그린 어린 소녀의 초상화로, 아마도 그의 딸 지오바나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모딜리아니는 소녀의 눈을 강조하고, 입술과 볼은 붉은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소녀의 머리카락은 파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으며, 배경은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일러스트레이션 시기의 특징인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색채와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 마무리

 

모딜리아니는 짧은 인생동안 다양한 시기와 스타일로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미술의 형식을 깨고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변화와 고민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은 후에야 비로소 인정받은 화가이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